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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틸리케의 팩트 폭격과 한국 언론의 업보
    카테고리 없음 2017. 10. 2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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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훈 스포츠 칼럼니스트] 최근 동아일보채널A’의 울리 슈틸리케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인터뷰가 화제가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014 9월 부임해 올해 6월까지 2 9개월 동안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으로서 아시안컵 준우승 등 좋은 성적도 올리고 진흙 속에 묻혀 있던 진주와도 같은 숨은 유망주들을 대표팀에 발탁,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저런 비판에 시달렸고, A매치에서 부진한 경기를 거듭한 끝에 지난 6월 카타르와의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에서 2-3으로 패한 뒤 사실상 경질됐다.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했지만 그는 역대 한국 대표팀 감독 가운데 최장수 감독이었다.


    대표팀 경질 이후 혼자 무거운 짐을 들고 택시를 잡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달 중국 슈퍼리그 톈진 테다 사령탑으로 부임, 팀을 4연승으로 이끌며 강등 위기에 몰렸던 팀을 슈퍼리그에 잔류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텐진에서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불과 3개월 전 한국에서 쓸모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쫓겨났지만 중국에서 드라마틱한 업적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어딘지 모를 씁쓸한 느낌을 갖게 된다.



    지난 26일 톈진 테다 국제회관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의 축구계는 물론 축구팬들에 대해서까지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의 발언 내용 가운데 몇 가지를 나열해 본다.


    가장 큰 문제는 축구협회가 명확한 로드맵과 목표가 없어 어려움에 부딪힐 때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확실한 목표와 비전이 없다.”


    축구협회는 장기 계획이 없었다. 2경기, 2개월 이렇게 짧게 본다. 안 좋은 결과가 있을 때 협회는 이와 맞서 싸울 만큼 강하지 못했다. 독일은 지난 20년 동안 대표팀 감독이 단 3명이었다. 한국은 4년 동안 감독이 3번 바뀌었다. 이런 환경에선 일하기 매우 어렵다. 인내심이 필요한데 한국은 인내심이 없었다.”


    한국은 독일처럼 선수층이 두껍지 않아 주요 선수 2, 3명만 잃으면 문제가 생긴다.”


    (2002년과 현재를 비교할 때) 시대가 변했고 같은 성공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본다. 긍정보다 부정이 크다. 히딩크가 2002년을 어떻게 준비한 줄 아나? 그때는 2명만 해외파였다. 나머지는 주중에 매일 훈련을 같이하고 주말에만 클럽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영국 독일에서 18시간씩 날아와서 이틀만 훈련한다. 2002년과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처음에 한국에 갔을 때 내 철학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코치들은 수비적인 전술을 지향했다. 내 생각은 공을 점유하는 것이었고 한국 코치의 생각은 공을 막는 것이었다. 한국팀은 잘 조직돼 있다. 문제는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유가 주어질 때 어떻게 사용할지 모른다.”


    (한국의 가장 약한 곳은) 공격이다. 공격수가 없다. 이동국이 뛴다고 들었다. 그는 38세다. 그게 한국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젊은 공격수가 없다. 한국의 철학은 수비 위주이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간 선수 중 대부분이 수비수 아니면 수비형 미드필더다.”


    한국 선수들이 더 침착하게 경기하고 언론이 좀 더 이성적으로 비판했으면 한다


    예상컨대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은 언론을 통해 드러난 분량보다 드러나지 않은 발언이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까지 놓고 보면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 내용을 바라보는 시선도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분히 감정적인 분풀이성 발언으로 볼 수 있는 말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할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팩트폭격에 가까운 내용의 말들이다.


    여기서 언론들은 슈틸리케 감독의 언론이 좀 더 이성적으로 비판했으면 한다는 말에 발끈할 법도 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부진한 경기를 펼친 이후 슈틸리케 감독이 특정 선수에 대해 평가한 발언 내용이나 패인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두고 일부 누리꾼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배설하듯 쏟아낸 비난을 언론들은 부풀리고 확대 해석하는 것도 모자라 왜곡을 일삼았다.


    그의 발언 내용을 이성적으로 뜯어보고 분석하기 보다는 슈틸리케 발언’, ‘슈틸리케 논란’, ‘슈틸리케 구설수같은 키워드를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려 기사 조회수 올리기에 열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을 비롯한 외국에서도 감독의 발언 내용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런 구설수들이나 논란이 언론에 의해 오랜 기간 지속되거나 특정 감독에게 낙인을 찍는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선수나 감독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언론사들의 검색어 장사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고, 해당 감독이나 선수는 이런 논란의 당사자로서 국내 축구 팬이나 언론의 레이더망에 존재하는 이상 계속 논란의 주인공으로서 낙인이 찍힌 채 생활해야 한다.


    이번 슈틸리케 감독의 인터뷰가 더 이상 큰 논란으로 번지지 않고 단기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이유도 그가 지금 당장 한국 축구와 무관한 사람이 됐고,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의 악플성 댓글에 이은 언론의 받아쓰기와 확대 재생산, 그리고 왜곡된 여론에 따른 팔랑귀축구협회의 부화뇌동 내지 경거망동이라는 악순환이라는 사이클이 오늘의 슈틸리케에게는 적용될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축구에 대한 슈틸리케 감독의 팩트폭격은 앞으로 한국 축구가 러시아 월드컵 준비는 물론 향후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하나의 참고자료가 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대표팀의 감독으로서 잘한 일도 있지만 잘못한 일도 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 언론은슈틸리케 감독의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분석하고 구분하는 데 실패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팩트폭격에 아프다소리 한 마디 못하고 얻어 맞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참으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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