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환 이후 35년만에 남아공서 열린 세계 타이틀전에서 승리
한국 남자 프로복싱계가 지인진 이후 2년 2개월 이어온 '노 챔프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IBO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김지훈(일산주엽체육관)의 소식이 일요일 아침 대한민국 스포츠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김지훈은 13일(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켐프턴파크에서 열린 IBO 슈퍼페더급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 졸라니 마랄리(남아프리카공화국)를 9라운드만에 KO로 제압하고 챔피언벨트를 획득했다.
비록 WBC 또는 WBA 등 메이저 복싱기구의 타이틀은 아니지만 전세계를 아우르는 복싱단체의 타이틀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세계타이틀이며 메이저 타이틀로 가는 교두보라는데 가볍지 않은 의미가 있다.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 홍수환 씨가 지난 1974년 당시 남아공에서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세계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물리치고 타이틀을 차지한 이후 35년 만에 남아공에서 열린 세계 타이틀전에서 한국인 선수가 거둔 승리이기도 했다.
올해 22살의 어린 나이에 그것도 생애 첫 세계타이틀 도전에서 원정경기의 불리함을 딛고 챔피언을 KO로 꺾는 완승을 거두고 챔피언벨트를 획득한 김지훈. 그는 도대체 어떤 복서인가?
'한국 복서의 무덤' 라스베거스에서 한국 프로복싱 사상 첫 승리를 거두다
김지훈 이라는 프로복서의 이름을 처음 접했던 것은 지난해 5월 한국인 복서로는 처음으로 '한국 복서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라스베거스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였다.
김지훈은 지난해 5월 17일(한국시간) 라스베이거스 토머스 앤 맥센터에서 열린 슈퍼페더급 논타이틀 매치(8R)에서 코바 고골라지(그루지야)를 1회 두 번 쓰러뜨린 뒤 ‘심판 스톱’으로 티케이오(TKO)승리를 거뒀다. 김지훈의 상대였던 고골라지는 김지훈과의 경기 전까지 20승(8KO) 2패의 전적을 기록중이었고, 세계복싱기구(WBO) 타이틀에 까지 도전했던 경험이 있는 강호였다. 그런 이유로 당시 김지훈의 경기에 현지 언론들도 놀라운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라스베거스...그곳이 어떤 곳인가
'비운의 복서' 김득구가 레이 맨시니와의 세계타이틀전에서 패한 직후 짧은 생을 마감했던 한 이 서린 장소인 동시에 백인철(1987년), 이승순(1989년), 김광선(1992년), 최재원(1994년) 등 과거 한국 프로복싱 황금기를 거쳐간 수많은 스타 복서들이 줄줄이 패하고 돌아갔던 한국 복서들에게는 무덤과도 같은 장소가 아니었던가. 그런 라스베거스에서 21살짜리 한국 복서가 세계적인 강자를 상대로 TKO 승리를 거뒀다고 하니 이 보다 더 쇼킹한 뉴스가 있을까.
미국 배너프로모션과 계약, 그리고 무패 행진
김지훈이 라스베거스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난 2007년 11월 미국의 저명한 프로목싱 프로모션 에이전시인 배너 프로모션과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내 프로복싱 침체로 세계 타이틀 도전을 성사시켜줄 프로모터도 없고 방송 중계권료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프로모션과 계약하고 미국 시장에서 경기를 하는 게 선수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당시 일산주엽체육관 김형렬 관장의 설명이었다.
김지훈과 배너 프로모션과의 당시 계약조건은 매년 3경기 이상 치르고 대전료는 경기당 1만달러 이상을 받되 세계 타이틀 도전시에는 최소 4만달러, 챔피언이 된 뒤에는 최소 7만5천달러 이상을 받는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훈은 미국 진출 계약과 함께 당시 보유중이던 범아시아복싱협회(PABA) 페더급 챔피언 타이틀 까지 반납하는 '배수의 진'을 쳤고, 결국 김지훈은 배너 프로모션과 계약을 체결한지 6개월여 만에 한국인 최초의 라스베거스 대전 승리를 따냈을 뿐 아니라 이후 단 한 차례도 지지 않았다.
필자는 김지훈이 라스베거스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김형렬 관장과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김형렬 관장은 김지훈의 세계챔프 등극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김지훈의 컴비네이션 펀치가 일품이고 특히 그의 어퍼컷에 제대로 걸린다면 배겨낼 선수가 없다는 것이 김 관장의 설명이었다. 또한 김지훈의 훈련태도 등 권투에 임하는 자세 또한 누구보다 모범적이라는 점도 김 관장으로 하여금 김지훈을 '준비된 챔프'로 믿는데 중요한 이유였다.
김지훈, "상대 주먹에 스릴을 느낀다. 나의 복싱 스타일? 하이에나"
- 훈련은 어떻게 하고 있나?
▲ 새벽에 일어나서 로드웍을 한다. 그리고 낮에는 잠시 쉬면서 비디오를 보며 연구를 하고, 오후에 체육관으로 와서 저녁까지 훈련을 한다.
- 복싱을 처음 시작한 계기가 있는가?
▲ 고2 여름 방학 때 친구들과 '복싱이나 한 번 배워볼까?'라고 이야기가 나와서 체육관을 찾았다. 누구나 그렇듯, 2주 정도 운동을 하고 그만뒀다. 이듬해에 관장님께서 체육관에 한 번 들르라고 해서 다시 찾아왔고, 그 때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형렬 관장 : 2주 정도 가르쳤는데 몸 구조가 딱 권투에 어울리는 체형이었다. 그 후 지훈이와 같은 학교의 학생이 선수부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고, '김지훈 아냐?'고 했더니 같은 반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다음 주에 체육관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고, 그 때 찾아와 운동을 시작했다. 그게 2004년이다. 지훈이를 데리고 온 그 선수는 한 달 후 그만뒀다.(웃음)
- 지금까지 복싱을 계속 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
▲ 복싱을 시작할 때 어떤 선수가 유명한지도 몰랐다. 체육관에서 배우다보니 실력이 느는 것도 느끼게 됐고, 경기에 나가서 이기고, 지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그리고 사실 공부를 못했다.(웃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무직을 할 것도 아니었고, 운동도 좋고, 관장님도 좋아서 하다 보니 세계 챔피언의 꿈까지 꾸게 됐다.
-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는가?
▲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으셨다. 아버지한테는 재수한다고 말씀드려놓고 운동을 계속했다. 한국 챔피언이 되고 나서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그 때 부터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신다.
-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은 되는가?
▲ 고3 때 집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좋아지고 있다. 관장님께서 지원도 해주시고, 아버지께서도 도와주신다. 따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다.
- 원초적인 질문이지만 맞는 것이 두렵지는 않은가?
▲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와 주먹을 주고받는 데에 스릴을 느낀다. 직업은 못 즐기는 거라던데, 나는 무엇보다 경기 자체를 즐긴다. 맞으면 더 때리면 된다. 한 대 맞으면 두 배, 열 배로 값아 주려고 노력한다.
- 본인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칼을 매일 매일 갈아야 한다.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 링에 올라가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 대기실에 있을 때부터 내가 지금까지 어떤 훈련을 해왔는지, 어떻게 이겨야 할 지 를 정리한다. 그리고 관장님과 상의했던 작전을 생각하고, 시작공이 울리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상상한다.
- 같은 체급에서 누구와 싸우고 싶나?
▲ 너무나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서 잘 모르겠다. 경기만 잡히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 강한 선수였으면 좋겠다. 파퀴아오라면 더 좋다. 싸워보고 싶다.
- 미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개척자라는 의미가 있다.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 일단 관장님이 만사를 제쳐두고 훈련을 봐주시고 있고, 나도 열심히 하고 있다. 벽을 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갈 길이 멀다.
- 만 21세로 복싱의 중흥기를 겪지 못했는데, 한국 복싱을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은 있나?
▲ 없다. 그냥 열심히 할 뿐이다. 노력에 따라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 어떤 복서가 되고 싶나?
▲ 권투 역사에 획을 그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냥 챔피언이 아닌 챔피언 중의 챔피언, 복싱 영웅이 되고 싶다.
- 자신의 권투 스타일을 설명해 달라
▲ 하이에나. 상대는 먹잇감이다. 기회가 왔을 때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코리아 콘덴더 결승, 그리고 눈앞에 온 메이저 타이틀 도전 기회
새로운 IBO 슈퍼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한 김지훈. 그는 조만간 메이저 타이틀 도전 기회도 얻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 프로복싱 중흥을 위해 열리고 있는 '코리안 콘덴더' 라이트급 결승에 올라있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경우 WBC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김지훈의 결승전 상대는 안병근(크로스체육관)으로 김지훈의 승리가 예상된다. 현 WBC 라이트급 챔피언은 에드윈 발레로(베네수엘라).
김지훈의 체급에는 김지훈 스스로 언급한 파퀴아오나 현 WBC 챔피언 발레로 뿐 아니라 수많은 강자들이 우글거리는 그야말로 정글과도 같은 무대라고 할 수 있다. 김지훈이 명실상부한 강자로 우뚝 서기에는 쉽지 않은 무대인 셈이다. 그러나 김지훈이 아닉 22살에 불과한 젊은 복서이고, 그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감안할 때 그는 한국 프로복싱의 10년을 이끌어갈 리더이자 '준비된 챔프'임에 틀림이 없다.
김지훈의 세계타이틀전을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프로모터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방송사들이 중계권을 따내려 경쟁을 펼치고 타이틀전 중계방송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그런 광경이 눈앞에 펼쳐질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스포츠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연아 은퇴하면 한국엔 아이스링크 필요없나? (1) | 2009/09/16 |
|---|---|
| 박지성, 거액 재계약 성공의 빛과 그림자 (3) | 2009/09/15 |
| '준비된 세계챔프' 김지훈, 그는 어떤 복서인가 (0) | 2009/09/13 |
| 영원한 코리언 특급 박찬호, 그의 눈물을 회상하며... (0) | 2009/09/12 |
| WBC 준우승에 '달랑' 3천200만원? 뭐니 이게... (2) | 2009/09/11 |
| '성별논란' 세메냐, 양성자 판정 파문 '일파만파' (0) | 2009/09/11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