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 이승엽이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승엽은 소속팀 요미우리가 재팬시리즈를 제패했지만 우승의 주역이 아니었다. 정규 시즌의 상당 부분을 2군에서 보내며 1군에서는 고작 77경기에만 출전하며 타율 2할2푼9리, 16홈런·36타점을 기록했을 뿐이다.
요미우리가 니혼햄 파이터스를 재팬시리즈 6차전에서 물리치고 우승을 확정지은 직후 이승엽은 곧바로 요미우리 잔류를 선언했다.
지난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이승엽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군 생활도 오래했고 30타석 이상 안타를 못 치기도 했다. 기술적인 부분보다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버하기도 했다. 자동차로 치면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은 셈"이라며 "내년에는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벼랑 끝에 섰다는 심정으로 다시 해 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이어 "요미우리와 계약이 내년이 끝이다. 지난 2년간 부진했고 내년 시즌에도 부진하면 잘릴 수밖에 없다. 용병 신분 아니냐. 이런 상황에서 성적이 나지 않으면 다른 길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3~4년 전보다는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생각은 많이 약해졌다."는 심경을 밝혔다. 미국행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언급이다.
올시즌 종료를 앞두고 이승엽을 아끼는 많은 팬들은 이승엽에게 친정팀 삼성 라이온스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고생이 되더라도 지금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승엽이 끝내 요미우리 잔류 선언하자 실망감을 표시하는 팬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승엽이 내년 시즌을 위해 '와신상담'의 의지를 밝혔지만 내년 시즌 이승엽의 전망은 2009 시즌을 준비하던 올해 초와 비교했을 때 더 안좋으면 안좋았지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니다.
2008 시즌 요미우리가 무려 13.5게임차를 뒤집고 극적으로 센트럴리그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이승엽은 단연 주역의 역할을 해냈다. 비록 2007년 10월 수술받은 엄지손가락의 치료와 베이징 올림픽 예선 참가로 시범경기를 건너뛴 탓에 전반기에는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였던 이승엽은 8월 베이징올림픽에 참가, 일본과의 4강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연이어 투런 홈런을 터뜨리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올림픽 이후 팀에 복귀한 이승엽은 9월16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일본 진출 5년 만에 처음으로 3연타석 홈런을 터뜨리고 당시 센트럴리그 선두 한신 타이거스와 우승을 놓고 벌인 맞대결에서는 쐐기 3점포(9월21일), 결승 투런포(9월27일), 결승 2루타(10월8일)를 연이어 작렬시키는 등 최고의 활약으로 팀의 역전 리그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반기의 부진으로 2008 시즌 타율은 2할4푼8리에 홈런 8개, 타점 27개로 일본 무대 진출 후 가장 저조했고,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재팬시리즈에서는 타율 1할1푼1리(18타수2안타), 삼진 12개로 제 몫을 전혀 못해내며 팀의 역전패를 막지 못했지만 정규시즌 막판 보여준 이승엽의 활약은 내용적으로 볼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2009 시즌을 준비하던 이승엽은 일찌감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불참을 선언하고 요미우리의 재팬시리즈 우승을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완전한 실패를 경험하고 말았다. 시즌 기록만을 놓고보면 지난 시즌 보다는 올시즌이 다소 앞서지만 내용적으로 봤을때 이승엽은 올시즌 요미우리에서 제대로 해낸 일이 하나도 없다시피 하다. 거기에다 내년 시즌에는 올 시즌보다 더 험난한 주전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2008 시즌 후반기 대역전극의 주인공으로서 희망찬 2009 시즌을 기다리던 올해초의 상황과 요미우리 잔류를 선언하고 2010 시즌을 기다리는 오늘의 이승엽의 상황은 그야말로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요미우리에서의 이승엽은 내년 시즌에도 성공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이승엽은 지난 17일 귀국 인터뷰에서 새 시즌을 준비하면서 체력적인 보강에 집중하기 보다는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만큼 상대 투수들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는 일본 투수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타격기술을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느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타자 이승엽'이 현역에서 뛸 수 있는 날은 이제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다. 자칫 내년에도 요미우리에서 재기하는데 실패한다면 이승엽은 그야말로 금쪽같은 3년이라는 시간을 어수선하게 보낸 셈이 되고 만다.
성적이 좋고 나쁨을 떠나 두둑한 연봉을 받는 이승엽이지만 톱클래스의 프로선수로서의 자존심을 생각해 볼때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새로운 도전 대신 요미우리 잔류를 선택한 이승엽이 단순히 '안락함'을 선택한 것이라고는 보고싶지 않다.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로서의 자존심을 내건 마지막 한 판 승부를 벌이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해답은 이승엽 스스로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이승엽의 다소 쓸쓸한 모습을 지켜보는데 올시즌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일본인 타자 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그리고 미국 출신의 유명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글귀도 머리속에 떠올려졌다.
"우물쭈물 하다 내 이렇게 될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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