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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FC]'논란의 판정패' 추성훈, 승리 대신 얻은 더 값진 '그 무엇'
    카테고리 없음 2015. 11. 3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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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FC 파이트 나이트 서울 대회(UFC Fight Night in Seoul)’가 열린 11 28일 저녁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그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어김 없이 사라 브라이트만의 타임 투 세이 굿바이(Time to say goodbye)’가 흘러 나왔다.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모두 유도 국가대표를 지낸 파이터로 지금은 사랑이 아빠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얼굴이 된 추성훈이었다.

     

    다른 파이터들이 요란한 록 음악이나 힙합 음악을 등장음악으로 사용 것과는 달리 추성훈은 변함 없이 이 음악을 등장음악으로 고집하고 있다. 마치 매 경기가 자신의 은퇴경기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날 추성훈의 등장 장면은 이전의 다른 UFC 경기에서 보여줬던 장면과는 약간은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필자의 기분 탓일 수도 있겠으나 어딘지 이전보다 더 비장하고 엄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가 옥타곤을 향해 서서히 이동하는 동안 경기장 안은 추성훈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관중 가운데 태극기를 흔드는 관중의 모습도 보였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옥타곤 아래에서 간단히 몸 상태 체크를 마친 추성훈은 옥타곤으로 들어서기 전 관중석을 향해 선 뒤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려 놓은 채 한동안 관중석을 응시했다. 그리고 옥타곤 쪽으로 몸을 돌려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옥타곤으로 들어섰다.

     

    마치 하나의 종교의식을 보는 듯했다.

     

    추성훈의 상대는 홍콩에서 주짓수 코치로 활약 중인 알베르토 미나. 추성훈이 상대하기에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팽팽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미나는 주짓수 코치답게 경기를 그라운드로 몰고 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1라운드에서는 예상 외로 타격전을 시도했고, 1라운드 종료 직전에는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반면 추성훈은 미나에 비해 좀 더 공격적인 태도로 경기를 펼쳤지만 좀처럼 타격 거리를 맞추지 못하면서 미나에게 이렇다 할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나중에 공개된 채점표에 따르면 이 경기의 승부는 1라운드에서 갈렸다. 세 명의 심판 가운데 두 명이 미나의 우세를, 한 명의 심판이 추성훈의 우세를 채점한 것.

     

    2라운드는 미나의 라운드였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미나는 2라운드에서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라운드가 종료되면서 추성훈은 기사회생했다.

     

    2라운드의 기세가 3라운드까지 이어졌다면 판정이든 KO든 미나가 승리했을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3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2라운드에 추성훈의 레그킥 공격에 다리 부상을 입은 미나가 소극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추성훈의 공격이 먹히기 시작한 것. 3라운드 막판 추성훈은 펀치 공격으로 미나를 위기에 몰아 넣었고, 미나는 번번이 바닥에 드러누워 그라운드 경기를 유도했다. 하지만 관중석으로부터 엄청난 야유가 터져나오면서 미나는 뜻대로 경기를 끌고 가지 못했다.


     

    경기가 모두 끝나고 두 선수와 관중들은 판정을 기다렸다. 잠시 후 나온 판정 결과는 1-2 미나의 승리였다. 채점표에는 2라운드 미나 우세, 3라운드 추성훈 우세였다. 결국 1라운드에서의 점수 차이가 승부를 가른 셈이다.

     

    판정 결과가 발표되자 관중석에서는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옥타곤 위에서 승자 인터뷰가 진행됐지만 야유소리에 묻혔다. 반면 패한 추성훈은 관중들로부터 승자 대접을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대회가 모두 끝나고 이날 경기를 펼친 한국 선수들과 승리를 거둔 외국 선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역시 추성훈과 미나의 논란의 판정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추성훈에게 판정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추성훈은 판정에 대한 코멘트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경기와 관련 추성훈은 한 마디 하고 싶은 것은 2라운드에서 넘어졌을 때 안 될까 생각했는데 (관중들의) 응원이 힘이 됐다. 3라운드 싸울 수 있었던 것도 응원 소리가 큰 힘이 됐다.”한국에서 경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행복한 시간 보낼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인 즉, 2라운드에 경기를 포기하려 했던 순간 홈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으로부터 2라운드를 버텨내고 3라운드에서 계속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은 데 대해 승패를 떠나 큰 감동을 받았고, 행복했다는 것이었다.

     

    재일교포로서 지난 세월 보이지 않는 차별의 시선을 받아온 그로서는 이날의 경험이 분명 의미 있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옥타곤에 들어서기 전 자신을 향해 응원을 보내는 관중들을 향해 오른 손을 왼쪽 가슴에 올려 놓고 평소보다 좀 더 긴 시간 멈춰있던 행동의 이유가 그의 말 한 마디로 설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추성훈은 앞으로 UFC에서 몇 경기를 치르도록 계약이 되어 있는지 잘 모른다고 했다. 파이터로서 이후에도 계속 옥타곤에 오를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 좀 쉬면서 생각해보겠다고 밝혔다.

     

    추성훈은 공식적으로 이날 승자가 아닌 패자다.

     

    하지만 그는 이날 한국 관중들의 열광적이고 일방적인 응원을 온몸으로 느끼며 경기를 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사실상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체감했다는 점에서 승리와는 성격이 다른 가치를 따지기 힘든 값진 그 무엇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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